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하여 - 선덕여왕에서의 조세개혁 부결과 종부세 위헌 판결의 공통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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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에서의 조세개혁 부결과 종부세 위헌 판결의 공통점은?
사는 이야기/주저리 주저리 | 2009/10/20 15:12

어제 선덕여왕 43화에서는 덕만공주와 미실의 세력다툼의 과정에서 "조세개혁"이라는 화두가 튀어나오게 됩니다.
5천호 이상을 가진 귀족에게는 중과세를 부과하고, 그 이하의 귀족 및 농민에게는 세금을 감면해준다는 내용으로,
그 내용 골자만을 놓고 본다면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하려 했던 "종합부동산세"와 비슷합니다.

종합부동산세란?

2003년 10월 29일 정부가 '부동산 보유세 개편방안'에 따라 종합부동산세 법안을 마련하면서 부동산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내놓은 개념으로, 부동산 과다 보유자에 대한 과세 강화와 부동산 투기 억제, 불합리한 지방세 체계를 개편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이다.

2005년부터 시행되었으며, 토지 및 건물 소유자들을 대상으로 주소지가 속한 지방자치단체가 관할구역의 토지 및 건물을 대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현행 재산세와 별도로, 국세청이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토지와 주택 소유자들의 전국 소유 현황을 분석해 누진세율을 적용해 부과하였다. 원래는 토지에만 부과하기로 하였다가 나중에 주택까지 대상에 포함시켰다.

2005년 시행당시의 과세대상자는 주택의 경우에는 국세청 기준시가로 9억 원 초과, 나대지의 경우에는 공시지가로 6억 원 초과, 빌딩·상가·사무실 등의 부속토지의 경우에는 공시지가로 4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 해당되었다. 2009년 현재, 개인별 합산시 6억원(1세대1주택자의 경우엔 9억)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자나 토지의 경우 종합합산토지는 5억, 별도합산토지는 80억을 초과한 자의 경우에 종합부동산세의 과세대상에 해당한다. 2005년 시행시 개인별로 합산해 부과하던 것이 2006년 세대별 합산으로 변경되었지만, 2008년 말 세대별 합산 부분이 위헌판결을 받아 다시 개인별 합산으로 재변경되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드라마에서 미실을 주축으로 한 부유한 귀족들은 자신들에게 중과세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의 자구책을 생각해내 화백회의의 만장일치제도의 헛점을 이용하여 덕만공주의 조세개혁안을 부결시킵니다.

법을 개정하는 제도에 관여하는 자들이 가진자들이기에,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 제도의 개정을 허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종합부동산세 제도가 2008년 위헌판결을 받을당시의 헌법 재판관 대부분이 종부세 과세 대상자였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너무나 비슷한 상황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국 선덕여왕에서의 조세개혁안 부결과 종부세 위헌 판결은 법이라는 제도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지위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 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덕만공주와 비슷한 일을 추진하고자 했던 대통령이 계셨었다는 것....
드라마에서 선덕여왕은 김유신과 김춘추의 도움을 받아 "칠숙의 난"과 "비담의 난"을 막아 주는 세력이 있었던 반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런 세력이 없었다는게 차이점이었겠죠. 쯥...

아무튼 어제 43화와 오늘 방영될 44화를 보면 우리나라 정치에 있어서 기득권 세력(미실 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잃지 않기 위해서 어떠한 수단을 동원하게 되는지

칠숙의 난

덕만공주가 즉위하기 1년 전인 631년, 여자가 왕이 된다는 사실을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칠숙과 석품이 반란을 일으켜 위기에 몰렸으나 이 난은 곧 진압되었다.

비담의 난

645년 상대등에 취임한 비담은 647년 선덕여왕이 정치를 잘못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려고 염종 등과 더불어 반란을 일으켰다. 신라 최고의 관직인 상대등이 일으킨 반란이므로 그 규모가 컸고, 사태도 매우 위급하게 전개되었다. 반란의 와중에 선덕여왕이 죽고 진덕여왕이 즉위하는 등 왕실이 위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김춘추(金春秋) ·김유신(金庾信) 등의 도움으로 반란을 진압하고 비담 등 주모자의 구족(九族)을 멸하였다.

이 반란은 단순한 왕위쟁탈전이 아니라 신라 정치사에서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신라는 중고기(中古期:법흥왕~진덕여왕)에 들어가면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정치사회이념으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화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특히 선덕여왕 이후는 귀족에 의해 폐위된 진지왕의 손자인 김춘추와, 가야 멸망 이후 신라의 새로운 김씨로 포섭된 가야왕실의 후손 김유신이 손을 잡고 이러한 정책을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갔다. 이에 자신들의 위치가 불안하게 된 귀족은 불만을 표출할 수밖에없었는데, 이것이 대대적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귀족의 대표인 상대등이 중심이 된 이 난이었다.

그러나 승리는 결국 김춘추 ·김유신에게 돌아가, 이들이 중심이 되어 더욱 강력한 왕권강화와 중앙집권체제에 필요한 여러 시책들이 실시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으로 즉위함으로써 귀족연합체제를 이루던 상대(上代)가 막을 내리고, 중대(中代)가 시작되면서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체제가 이루어졌다. 결국 이 난은 신라 상대 말기에 왕권을 견제하려던 귀족세력과 왕권강화를 통한 중앙집권체제를 수립하려던 왕실세력의 싸움이었고, 여기서 김춘추 ·김유신 등의 왕실세력이 승리함으로써 장차 신라 중대 왕실이 성립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아무튼 요즘 월요일 화요일에는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에 하루 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2009/10/20 15:12 2009/10/2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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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미디어비평 블로그-미디어후비기 2009/10/20 16:14삭제
선덕여왕, 신라엔 세금폭탄 선동하던 조중동 없었다
진평왕의 뒤를 이을 왕위승계를 둘러싼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여성의 몸으로 왕이 되겠다고 한 덕만에 이어, 골품제를 부정하며 왕이 되겠다던 춘추, 그리고 급기야 '잠자던 용이 깨어났다'며 여성과 골품의 벽을 동시에 뛰어넘으려는 미실까지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나섰다. 이런 미실에 대적하려는 덕만이 어제는 이른바 '조세개혁안'이라는 것을 내놓고 미실의 지지층인 귀족들을 분열시키려는 계책을 진행시키고 있다. 당시 신라에서 실제 덕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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