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하여 - 오늘은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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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사는 이야기/읽을거리, 볼거리 | 2009/10/26 14:12

오늘은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3.1절.. 광복절 / 한글날등.. 기타 기념일에는 블로거 스피어에 관련글들이 많이 보이곤 했는데......

제가 발견을 하지 못한 탓일까요?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 글들이 별로 안보이네요....

엊그제 주말에 안중근 의사의 이토 저격 사건 관련 동영상 원본을 찾아가는 과정을 KBS에서 보여주더군요.
비록 원본을 찾는데는 실패하였지만, 그동안 알려진 3개의 장면 이외에 하나의 장면을 찾는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안중근 의사 서거 관련해서 배너를 장식하고 있는 곳도 "네이버"가 유일해 보이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중근 연보

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1910년 3월 26일)은 대한제국의 교육가, 독립운동가, 대한의병 참모중장이다. 본관은 순흥, 고려조 명현 안향의 26대손이다.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에서 현감 안인수의 손자이자 진사 안태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천주교 성당 건축에 참여할 정도로 독실한 신앙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안중근 자신도 1895년 천주교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과 프랑스어를 배웠다.

태어날 때 배에 검은 점이 7개가 있어서 북두칠성의 기운으로 태어났다는 뜻으로 어릴 때에는 응칠(應七)이라 불렀는데, 이 이름을 해외에 있을 때 많이 사용했다.

1905년 조선을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해, 독립 운동에 투신한 그는 1909년 10월 26일에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사살했다.

어려서 안응칠(安膺七)이라는 아명으로 불렸으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의 세례명은 사도 성 토마스의 이름을 딴 토마스였다. 그래서 안중근 토마스(혹은 도마 안중근)라고도 불린다.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부 광석동에서 부 안태훈 모 백천조씨 사이에서 출생.
1894년: 16세에 김아려와 혼인. 김구와의 첫 만남.
1896년: 부친 안태훈이 천주교에 입교.
1897년: 19세에 천주교에 입교.
1898년~ 1904년: 천주교 전교 사업. 천주교대학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불발.
1905년: 부친 안태훈 사망
1906년: 삼흥학교, 돈의학교를 운영하였으며 서북학회에 가입.
1907년: 석탄회사 삼합의 설립하였으나, 같은해 8월1일 군대해산 때 국외망명.
1908년: 대한의병 참모중장으로 국내진공작전.
1909년: 단지동맹 결성(동지 11명).
1909년: 10월 26일: 거사
1910년: 2월 14일: 일본제국 재판부는 안중근에게 사형을 선고.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여순旅順에서 순국하였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역옆에 묻어두었다가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라고 하였으나, 순국한지 100년.... 우리나라가 광복한지 60년이 다 되가도록 낯선 이국땅인 여순의 차디찬 땅 어느곳에 묻혀 있다.
 

爲國獻身 軍人本分
나라위해 헌신함은 군인의 본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저격사건

1909년 3월 2일 노브키에프스크에서 함께 의병활동을 하던 김기룡, 황병길,강기순·유치현·박봉석·백낙규·강두찬·김백춘·김춘화·정원식 등 12명이 모여 단지회(斷指會:일명 단지동맹)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그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로 하고 3년 이내에 성사하지 못하면 자살로 국민에게 속죄한다고 맹세했다. 9월 블라디보스토크의 〈원동보 遠東報〉와 〈대동공보 大東共報〉를 통해 이토가 북만주 시찰을 명목으로 러시아의 대장대신(大藏大臣) 코코프체프와 회견하기 위하여 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하얼빈과 채가구(蔡家溝)를 거사장소로 설정하고, 채가구에 우덕순과 조도선을 배치하고 그는 하얼빈을 담당했다.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가 코코프체프와 열차에서 회담을 마친 뒤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고 환영군중 쪽으로 가는 순간 권총을 쏘아, 이토에게 3발을 명중시켰다.

이어서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森泰二郞,만철(滿鐵) 이사 다나카田中淸太郞 등에게 중경상을 입힌 뒤 '대한만세'를 외치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러시아 검찰관의 예비심문과 재판과정에서 한국의병 참모중장이라고 자신을 밝히고, 이토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사령의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며 안중근 개인의 자격으로 사살한 것이 아니라고 거사동기를 밝혔다.

러시아 관헌의 조사를 받고 일본측에 인계되어 뤼순 감옥으로 옮겨졌다.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여러 차례의 재판을 받는 동안 "나는 의병의 참모중장으로 독립전쟁을 했고 참모중장으로서 이토를 죽였으니 이 법정에서 취조받을 의무가 없다"라고 재판을 부정하고, 자신을 전쟁포로로 취급하여 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일본검찰에게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을 15가지를 아래와 같이 주장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밝혔다.

조선의 민 황후를 시해한 죄요.
조선의 황제를 폐위시킨 죄요.
조약과 7 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요.
무고한 조선인들을 학살한 죄요.
정권을 강제로 뺏은 죄요.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강제로 뺏은 죄요.
군대를 해산시킨 죄요.
교육을 방해한 죄요.
조선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요.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요.
조선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퍼뜨린 죄요.
현재 조선과 일본 사이엔 전쟁이 쉬지 않고 청일/중일전쟁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태평 무사한 것처럼 그대들의 일왕을 속인 죄요.
동양 평화를 깨뜨린 죄요.
그대들 일왕의 父王을 죽인 죄다!



 

2009/10/26 14:12 2009/10/2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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